유형문화재
흥국사 공북루 편액
여수시문화원
2024-02-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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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지정번호
∗ 시대
∗ 소재지
∗ 규모
∗ 지정연월일
사찰 배치 구조에서 공북루가 있는 곳은 매우 드문 편인데, 공북은 임금이 계신 곳을 의미하고, 성에서는 북쪽문에 해당한다.
흥국사에 승군이 있었으므로 자체를 하나의 성으로 보고 북쪽문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1893년 절도사 이봉호가 쓴 흥국사 공북루 중수기와 현판은 공북루가 실제로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공북루 중수기에 "좌수영 서쪽 영취산 흥국사는 불일보조국사가 창건한 의승들의 진주사다"라고 하였으며, "정문에 위치한 공북루가 보수한 지가 오래되어"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정문은 영선문이므로 바로 영성문 아래 15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현재도 성문 양 옆에 해당하는 문지 흔적이 남아 있다.
공북루는 승군이 와해되고 구한말과 일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없어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1893년에 보수하였다. 현판이 264×97cm의 크기로 남아 있으며 "계사동수군절도사서(계사동수군절도사서)"라고 기록하고 있어 이충무공의 글씨라고 전해오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이 현판이 대단히 큰 것으로 봐서 공북루 성문도 그 규모가 컸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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