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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곡화 목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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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문화원
2024-02-26 14:54 22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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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연월일




백야곶 목장의 설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 16년 12월 병조에서 아뢰기를 "전라도 백야곶 목장의 호랑이와 표범을, 순천 부사와 조양진 첨절제사 및 각 포의 만호로 하여금 군인을 요량하여 거느리고 잡되, 그 중에 먼저 창질을 하거나 먼저 쏘아서 잡은 자가 있거든 마리 수를 계산하여 벼슬을 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전라도 지역에 목장이 집중적으로 세워지던 세종 10년(1445)에 설치된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곡화 목장으로 이름을 바꾼 이 목장은, 지금 소호동 해안으로부터 화양면 오천리 해안까지로 이곳에 돌로 곡화목장분계성을 만들고 말을 놓아서 길렀다. 이 당시 여기에 수용된 말은 1,027필이었으며, 목자는 446명이었다.

 철따라 목장을 이동, 봄에는 통구미산, 여름 이영산, 가을 천마산, 겨울에는 서이산에서 군마을 길렀다 하며, 밤이면 말이 도망치지 못하게 이웃 장수 마을 사이 11km 산등성이에 등불을 켰다고 한다. 곡화목 감목관 가운데 조정은 목동을 거느리고 부산포 싸움에 자원 출전하여 적병을 다수 사살하였을 뿐 아니라 적의 군수물을 다량으로 노획함으로써 이순신이 그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였다.

 화동 마을에는 목관 선정비가 모두 5기가 있는데 3기는 세워진 비이며 2기는 고인돌 위에다 기록한 것이다. 그중 1기는 3명, 다른 1기는 2명 등 전체 8명이 목관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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