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순천부 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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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지정번호 사적 제 392호
∗ 시대 조선시대
∗ 소재지 여수시 시전동 708
∗ 규모 18,541㎡
∗ 지정연월일 1995년 4월 20일
선소는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조선 기술(造船技術)을 지닌 나대용(羅大用)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거북선은 여수 지역에 있던 본영 선소, 순천부 선소 및 방답진 선소 세 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난중일기(亂中日記, 1592)에 의하면 순천부 선소는 임란 전에 생겨 임진왜란 중 전라좌수영 관하 순천부의 수군 기지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하나 만들어진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760)에 "輿地圖書 長生浦 在雰六十里 本府戰船所泊"라는 기록과 같은 책 순천부 지도에 현재 선소 자리에 '船所'라는 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순천부 선소는 장생포에 있고 장생포는 선소가 있는 포구를 가리키고 있다. 또한, 규장각에 소장된 「順天府 古蹟(1871)」고지도에는 현 위치에 '船所'라고 표기하고 「自邑東距六十里 」라는 路程을 기록하고 있으며 長城마을도 나타나 있다. 또 이 지도에 나타난 선소 시설로는 선소창(船所倉), 수군기(水軍器)가 있을 뿐 구전되어 온 세검정(洗劍亭)은 보이지 않고 바다에 전선 2척이 그려져 있다.
가. 굴강
순천부 선소(현 여수시 시전동)에는 배를 피항시키거나 긴급히 출항하기 위한 인공 구조물인 굴강(掘江)이 있다. 직경 40m 내외의 원형이며 깊이는 석축 상면에서 5~6m 정도로 추정된다. 굴강 북쪽 입구는 폭이 약 9m이고 둘레에 쌓아졌던 석축은 대부분 유실되었다.
굴강 내부의 한곳과 입구 동서 양쪽에 노출된 하부에 잔존한 석축은 굴장 석축의 기저부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 높이는 1m 정도 남아 있다. 석축에 사용된 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40~50cm의 자연석과 깬돌을 사용하였고, 축조법은 자연석 막쌓기로 뒷채움은 특별히 보강한 흔적이 없으며 석축 후 잔재를 흙과 같이 채운 것 같다 굴강 내부 석축은 굴강 중심을 향해 약 50~60도의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적어졌으며, 입구에 가까운 곳은 훨씬 급한 경사로 쌓아졌다.
나. 계선주
복원된 세검정 건물 앞 바닷가에 계선주(繫船柱)가 있는데, 높이는 140cm로 이 계선주에 거북선과 판옥선을 매어 두었다고 구전되어 왔으며, 선소 입구의 초소적인 위치, 즉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보아 해안 벅수로 추정하기도 한다.
다. 세검정
임진왜란 당시 수군과 관계 깊었던 건물이 임란 후 보수 또는 개축되면서 '세검정'이라 불리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물의 장축은 동서방향이며 초석의 전체 배치 상태는 알 수 없지만 잔존한 초석의 주간을 보아 최소한 정면 7칸, 길이 15.8m 정도로 보여진다. 현재 복원된 세검정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1칸의 북향 맞배지붕으로 산기슭에 인접해서 북쪽 해안을 향하고 있다.
라.풀뭇간
풀뭇간은 군기 제작과 수리가 이루어진 곳으로 집수구와 단조로가 발견되었다. 집수구의 남쪽면은 자연 암반층이지만 북쪽면은 인공의 흔적이 보이고, 암반의 중심 부분에는 원래 암반층 내에 있었던 직정 10~20cm의 자갈들이 여러 개 빠져 있다. 암반 웅덩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므로 수조로는 아주 적합하며, 또한 단조 과정에서 철기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열을 급격히 낮춰야 하므로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되어야 하는데 단야로가 이곳에 위치한 것은 그러한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단조로는 암반 구덩이에서 북동쪽으로 3m 떨어져 있는 장타원형 유구로 현재 지표보다 70cm 아래에 있으며 크기는 105×50cm 규모인데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로의 바닥층과 그 일부이다. 현재 유구 외곽을 따라 3개의 돌이 놓여 있으며 로 바닥층 외곽 테두리선을 따라 약 5cm 너비로 모래층이 일부 둘러져 있고, 단조로 남쪽 40cm 지점에는 모루돌로 보이는 2개의 넙적한 돌(직경:40cm, 두께:15cm 정도)이 있다. 이 돌 주변에는 목탄과 소량의 단조 박편, 단조 과정중에 생긴 쇠붙이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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