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통제이공수군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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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지정번호 보물 제 571호
∗ 시대 조선후기(1615)
∗ 소재지 여수시 고소동 620
∗ 규모 높이 3.06m, 폭 1.24m
∗ 지정연월일 1973년 5월 4일
여수시 고소동 계산 (117m)에는 1947년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의 비각인 고소대가 있는데, 그 안에 통제이공수군대첩비, 타루비, 동령소갈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귀부, 비신, 이수의 3부분을 잘 갖추고 있는데 팔각으로 각을 준 지대석과 귀부를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귀부에는 가늘고 긴 다리와 형식적인 머리를 그리고 등에는 귀갑문을 새겼다. 그 의헤는 직사각형 비좌를 놓아 귀부와 비신을 연결하고 있으며 비신 위에 용을 새긴 이수를 얹었다. 비석 위쪽에 전세체로「統制李公水軍大捷碑」라는 이름을 새기고, 그 아래에「有明朝鮮國正憲大夫行全羅左道水軍節度使兼忠淸全羅慶尙三道水軍統制使 贈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公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 經筵事德豊府院君諡忠武李公水軍大捷碑銘幷序」라는 긴 제목이 붙였다.
이충무공의 부하로 있다가 전라좌수사, 황해병사를 지낸 유형이 돌을 보내 김상용이 충무공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었으며, 비문은 김형성이 새겼다. 끝부분에 「萬曆四十三年五月立」의 명문이 있어 광해군 7년 (1615)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942년 봄, 일본인 여수 경찰서장 마쓰끼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대첩비각을 헐고 대첩비와 타루비까지 감추어 버린 것을 1946년 국립 박물관 정원에서 발견, '충무공 비각 복구기성회'를 구성하여 1947년 현 고소대에 비각을 세우고 타루비, 동령소갈비와 함께 봉인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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